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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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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6기 장성열
댓글 0건 조회 150회 작성일 06-01-1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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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본다. 등소평이 黑猫白猫를 예를 들면서 경제정책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이래 중국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동부 해안 지방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물결은 황하를 지나 장강을 따라 서부 오지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샨샤댐을 막아 수로를 확보하고, 서부로 향하는 효율적인 물류라인이 확립된 것이다. 머지않아 중국 서부는 동부 해안 못지않게,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인도 유럽을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로 다시 탄생될 것이다.
중국 서부 오지는 공산주의 시절에는 중앙정부의 힘이 별로 미치지 않아, 낙후되어 있었고, 그 반면에 그들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시점에, 그 변화는 공산주의 정부의 강압적인 힘보다 엄청날 것이다. 그것은 자본의 힘인 것이다. 연초에 중국 서부의 발전을 텔레비전에서 보았을 때, 순박한 농부가 그들의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도시의 빈민이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중국 서남부의 오지의 수많은 소수민족의 전통과 생활양식은 이렇게 변화할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운 좋게 성공을 하여 자본주의를 향유하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도시의 빈민으로 몰락할 것이다. 어쩌면 나중에 그들은 후회할 것이다. 과거 부족끼리 모여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던 때가 더 좋았다고. 그들이 지니고 있던 고유의 전통과 문화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문명에 의해 송두리째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자식들은 돈을 벌기 위해 또는 공부하기 위해 대도시로 나올 것이고, 그들의 부모는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대도시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 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천혜의 자연환경은 무참히 깨어지고 환경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대두 될 것이다.
등소평이 택한 실용주의 노선, 자본주의는 과연 중국에 있어서 잘된 일이었을까? 현재로서는 등소평의 결단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훗날에도 과연 그에 대한 평가가 이대로 유지가 될까? 엄청난 빈부의 격차와 천혜의 자연환경이 파괴된 다음에도 말이다. 또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거 공산주의 시절에는 중앙 정부는 중국 서남부 오지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중앙정부의 자본의 힘도 미약했었고, 험난한 교통으로 인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조차도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앙 정부에서 그곳을 예전처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잃어버린 것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공산정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될 것이다. 사회주의 정부의 속성은 중앙집권적이 수밖에 없고, 게다가 자본이라는 유혹에 침 흘리지 않을 중앙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는 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정부군과 반군이 서로 싸우고 있다. 그로 인해 국민들은 살육과 고통에 몸서리 치고 있다. 정부군과 반군은 그들의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을 혹사시켜 다이아몬드를 유럽의 보석상에 헐값에 팔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여자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시에라리온의 국민들은 살육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군과 반군은 국민들의 행복은 아랑곳없이 오로지 정권찬탈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들의 국가를 세우기 위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시에라리온 국민들은 국가라는 이름의 엄청난 힘과 자본주의의 상징인 다이아몬드에 의해 세계에서 제일 불행한 국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쿠르드족을 보자. 크루드족은 유크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서 일어난 메소모타미아 문명의 주역이었다. 살라딘이라는 걸출한 전사를 배출한 용맹한 민족이기도 했다. 기원전 3000년 전에 이미 도시를 건설한 문명인이었다. 지금은, 터키와 이란 이라크에 흩어져 자신의 국가를 갖지 못하고 여러 나라로 부터 핍박 받으며 살고 있다. 그들이 핍박 받는 이유는 그들의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고대 문명을 건설한 이후, 그들은 쿠르디스탄이라는 그들의 영토에서 한번도 국가를 세우지 않고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2 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구 열강들의 논리대로 중동은 국경이 그어졌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성전을 근거로 나라없이 떠돌다가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했고, 팔레스타인들도 피나는 싸움 끝에 그들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의 노력에 의해 그들의 국가를 세운 것처럼 보일터이지만, 사실은 서구 열강의 이해타산과 논리로 그들의 국가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이스람교와 기독교의 싸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종교보다도 국가라는 형태의 전쟁인 것이다. 소박한 종교가 국가의 틀 속으로 종속이 되고 왜곡이 되어 권력을 가진자들의 노리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름지기 종교라는 것은 얼마나 진실되고 평화로운 것이었는가. 그것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대변하여 변질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라는 중앙집권적 권력은 이렇듯 민족과 종교 조차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자본주의라는 망령에 개발과 발전이라는 괴물이 첨가되었을 때에는 그 파괴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대안을 세워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는 멸망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자본주의로 무장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에게 지구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 자본주의 국가주의의 결론은 이제 자명해졌다. 이제 차분하게 생각할 때인 것이다. 정신없이 앞으로만 나갈 때가 아니고,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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